목장의 비극

주기환 0 4,053 2005.02.05 03:50
목자들의 부르짖음과 양떼의 인도자들의 애곡하는 소리여 나 여호와가 그들의 초장으로 황폐케 함이로다

목장은 평화의 동산을 연상케 합니다. 목장이란 말은 평화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푸른 초원에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는 그림이야말로 얼마나 환상적입니까?

교회가 목장이라면 당연히 그와 같은 곳이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교회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평화의 교향곡이 초원에 울려 퍼지고 싱그러운 향기가 넘쳐나는 교회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의 주변을 둘러 보면 시끄러운 소음에 짜증나는 교회가 많고, 시꺼먼 먹구름이 짓누르는 답답하여 질식할 것만 같은 교회가 많고, 서로 잘났다고 도토리 키재기 하듯 신경전을 벌이는 역겨운 교회가 많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맛이 나간 교회가 많습니다.

평등하고 평화롭고 푸른 목장 같은 교회가 아쉽습니다. 교회라는 곳이 고요한 목장이어야 할텐데 시끄러운 공장 같거나 복잡한 시장바닥 같다면, 이것은 확실히 목장의 비극입니다.

어떤 교회는 몇 년을 두고 싸우는 교회도 보았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교회는 평화로운 교회였는데 서로가 자기 편을 만들어 패싸움을 벌이는 교회도 보았습니다.

목장의 비극이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그다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애써서 막거나 약간의 희생만 지불하면 됩니다. 그러나 목장의 비극이 교회 내부의 문제이거나 목자와 양의 갈등으로 일어난 것이라면, 그것은 큰 문제이고 골칫거리입니다. 교회에서 생기는 대다수의 사고는 그런 종류의 사고입니다.

왜 목자와 양 사이에서 문제가 야기되는 것입니까? 일차적인 책임은 목자에게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럴 경우 목장의 책임자가 지혜롭게 처리하기만 하면 해결의 가능성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목자의 판단이 잘못되었거나 지도력이 부족하였거나 수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 아니하였다면 비극은 확대되고 사건은 어렵게 꼬이게 됩니다. 그 사건을 잘못 풀어가는 지도자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목자의 판단입니다. 상황 판단을 정확하게 하기만 하면 쉽게 풀 수 있는 것도 판단을 잘못해서 어렵게 만들고 맙니다. 교회의 문제는 대개 사소한 것들로부터 일어났다가 그 다음에는 목사의 문제로 발전해 가게 됩니다.

그 다음 단계는 도덕적인 문제가 제기되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행정적인 미스가 발생하여 지도력의 결핍, 영적 무기력, 성격 조절을 잘못하는 등 목사에게 치명상을 주는 사건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양들은 그럴 때에 주춤거리거나 당황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목자를 잘 따르려고 하지 않고 뒤로 처집니다. 이런 것을 보는 목사는 속이 상하게 되고 양들을 거칠게 다루기 시작하여, 끝내 이성을 잃은 행동까지 서슴지 않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끝나고 맙니다.

지배를 받는 계층은 언제나 지배자에 대한 반감, 반발, 반항 같은 생리가 그 마음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목자가 양을 지배하려고 들면 그런 심리가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서 자주 그런 사고를 보는데, 대개는 목사가 교인을 지배하려고 하는 데서 야기된 것 같습니다. 목사가 교인을 지배하려고 하면 반드시 그런 사고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양을 먹이는 것을 한자로는 “목양”(牧羊)또는 “위양”(爲羊)이라고 성경에 표기되어 있습니다. 목회라는 것은 양을 위하는 정신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양을 위하여!” 이것이 목양의 원리입니다. 양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양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을 위하는데 양이 왜 반발하겠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양이 미련해서 자기를 위하여 애써주는 목자를 잘 모른다고 한다면, 알 때까지 알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목자의 임무입니다. 양을 위하는 목장에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목회에 미숙한 목회자들 중에는, 목자인 자기를 위해 주는 양을 먼저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를 위해 주는 교인’보다 교인을 위해 주는 목사가 진정한 목회자입니다. 비극은 바로 이런 데서 시작됩니다. “양을 위하여”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뜻을 따른다면 목장의 비극만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목장의 비극을 여러 가지로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목장에 풀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비극입니다. 반면에 목장의 행복은 풀이 넘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거나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아서 목장은 비극에 처하게 됩니다. 먹이를 찾아서 동에서 서까지 헐떡이는 시대를 목장의 비극의 시대로 예언하기도 하였습니다.

양식이 있어도 입에 넣지 않으면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양식입니다. 먹고자 하는 양식이 양식입니다. 먹기가 싫은 양식은 양식이 아닙니다. 목자에게는 풍족하게 먹일 수 있는 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양식이 충분한 목장에는 비극이 일어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양식을 준비하는데 전력을 다하여야 합니다. 초장이 불에 타 버린 경우의 비극과 초장에 가뭄이 극심하여 메마른 경우와 초장에 황충이떼 같은 해충의 피해로 말미암아 초장의 비극이 일어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초장이 황폐하게 되는 비극입니다. 여기에 민중 또는 민족의 비운이 겹쳐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초장은 어떠합니까? 초장에 꼴이 풍성합니까? 양들이 흡족하게 먹고 즐길 충분한 목장입니까? 목장인 교회가 건조하게 메말라서 답답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초장을 불태워 버렸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를 일삼으며 하나님을 노엽게 했을 때였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희희낙락하고, 하나님보다 자기들 집단이나 조직이나 제도에 더 집착하여 거기에만 신경을 쓰고 정성을 바친다면, 하나님은 그 교회를 그냥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초장에 화재가 나든가 가뭄이 오든가 황충이떼가 날아오든가 하여 양들이 굶주려 울부짖는 비극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도 교인들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아름다운 목장과 같이 교회가 평화롭고 은헤롭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초장의 비극은 오늘날에도 볼 수 있습니다. 은혜가 메마르니 초장이 건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속의 오염이 교회를 뒤덮으니 초장이 병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목자들이 나태하니 초장이 혼잡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초장입니다. 교회를 윤택하게 만듭시다.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는 풍성한 초장을 가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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