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익 장로님께 감사 드립니다.

조정칠 목사 0 5,482 2011.01.14 06:52
존경하는 장로님!

지난 번에는 퀸즈교회에서  반갑게 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만 오늘은 문자로 다시 인사를 올립니다.  감히 고명하신 장로님의 존함을 임의로 거명하는 결례를 너그럽게 용납해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장로님께서는 저에게 목회를 행복하게 장식해 주신 고마우신  어른이십니다.  그 은덕을 알려 후대에 귀감을 삼고 싶은 마음에서 이 글을 씁니다.

목회자들이 건강이 좋지 않아서 중도에 목회를 그만 두게 된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저도 역시 그런 일을 당할 가능성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정년을 다 채우고 명예롭게 목회를 마감할 수가 있었던 것은 오로지 장로님께서 베풀어 주신 후의때문이였습니다.

제가 서울 신용산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 장로님을 처음 만났었습니다.  뉴욕에서  장로님께 첫 인사를 드렸었던 때가 저의 여식이 그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루어진 만남이었습니다. 저는 장로님을 뵙자마자  가슴이 설레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국이었더라면 감히 가까이서 뵙기가  쉽지 않았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니다.

그로부터 몇 차례 저는 장로님의 초청을 받아 융숭한 대접만 받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실명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누구에게 무슨 도움을 드릴 힘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양쪽 눈의 시력을 다 합쳐도  0.1이 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런 시력으로는 목회도 계속 할 수 없을 것 같아 도중 하차라도 할 각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장로님께서는 출장 중이라시며 동경으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모처럼 장로님의 호의로 동경 나드리를 했었습니다. 장로님 내외분께서 공항에 마중을 나오셨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경 뉴오따니 호텔에 투숙 했을 때 그 호화 객실은 당신께서도 써 본 적이 없었노라고 하시며 극진하게 대우를 해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장로님은 저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세우시고 키우신 혜천대학과 혜천대학교회 담임으로 저를 초빙하시겠다는 뜻을 비치셨습니다. 너무나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로님은 제가 어느 정도로 눈에 타격을 받고 있는지 모르고 계신 듯 했습니다. 마치 제가 무엇을 속이고 있는 것 처럼 죄송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눈만 아니라 모든 것이 장로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숨김없이 고해 드렸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장로님의  결정적인  말씀 한 마디에 우리 부부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장로님의 설득력 만이 아닌 하나님의 부름 같았기 때문이었습니 다. 장로님의 신앙  앞에 저의 항변은 아무 힘도, 의미도  없었습니다.

그 때 그 말 한 마디는 제 평생에 가장 큰 감동이었습니다. 장로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눈이 전혀 보이지 않아도 , 아예 장님이라 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어느 누구보다 더 잘 보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장로님께서는 그 약속을 다 지켜 주셨습니다. 저는 어떤 목회자도 부러워하지 않고 행복하게 마지막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떠나야 할 그 교회는 겨우 6년 째 접어 들었을 때였으니 사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 다. 눈에 병이 난 것도 그 교회에 와서 일어난 사고이니 그 교회에서 반드시 회복을 하여 목회를 할 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런 몸으로 떠난다면 교회에 큰 부담을 지우게 되고, 그것을 제 힘으로 감당 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기도하고 또 생각하여 마땅한 명분을 찾기로 했습니다. 제 판단은 그 교회에 짐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눈으로 목회가 정상적으로 될 수가 없다는 판단은 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의 정서라는 것은 명분보다 훨씬 더 넘기가 어려운 벽 같았습니다. 그 고심의 기간이 일 년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마냥 저를 기다려 줄 리가 없었습니다.

끝내 교회 앞에서 선언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급적이면 자극을 주지 않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연약한 저를 좀 놓아 달라고 동정을 구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제 눈이 더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고 낫기를 기다리는 것은 가혹한 형벌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제 형편을 잘 알고도 모셔 가겠다는데  이럴 때 좀 봐 줄 수 없겠느냐고 읍소를 했습니다.

긴장과 침묵 중에 저의 뜻은 통과되었습니다. 저는 일 년을 기다려 주신 장로님께 소식을 전하고 이어 대전으로 임지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 날부터  베풀어 주신 은택을 어떻게 다 공개하겠습니까? 우람한 거목에 기대어 평탄하고 즐겁게 그네를 타듯이 지냈습니다. 저의 필요를  항상 흡족하게 채워 주신 거장 이병익 장로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여력에 힘 입어 은퇴한 지 8년 째 되는 올해도 계속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있으니 어찌 감사하다고 아니하겠습니까?  시력이 남 보다 떨어질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부족한 저에게 단 한 번의 불화도, 사건도 없이 정년을 채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장로님의 그 은혜는  나의 자손 대대로  잊지 않고 고이 간직하여 살겠습니다.

부디 장로님과 권사님 건강 하시기 빌겠습니다.          

                               2011년 정월   뉴져지 에디슨에서
                                                  불초 조 정 칠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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