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펐던 추억 그러나 좋았던 시절

조정칠 목사 0 3,772 2005.09.24 01:57
경기도 파주군 문산면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조그만 교회가 있었다. 교세가 워낙 열악 하여 교역자가 상주 할 수가 없어 신학생이 주말에 와서 주일 예배를 인도 하는 형편이었다. 집사가 몇 명 있기는 했으나 생활 형편이 어려운 이들 이었다. 우리 신학교 기숙사에 한 학우가 그 교회를 맡게 되어 그 곳 사정을 자주 듣곤 했다. 청량리 역에서 열차를 타고 금촌 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 타고 가야 하는데도 교통비 조차 부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교회였다.

그런 중에도 교인들은 부흥회를 열어 달라고 조르고 있어서 전도사는 기가 막힐 노릇 이었다. 그들의 요구가 부당한 것이 아니라 부흥 강사가 오면 당장 숙식을 해결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 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전도사로부터 그 교회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그때 까지 부흥회를 인도해 본 경험이 없어서 사양을 했다. 그러나  한번만 도와 달라는 부탁을 끝까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사례비는 없고 숙식도 같이 한다는 조건으로 나는 처음 부흥회를 인도하게 되었다. 나의 상식 으로는 부흥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 되는줄 알았다. 그러나 그 교인들은 나 보다 훨씬 부흥회에 익숙한 경험자들이었다. 첫날 부터 건빵으로 식사를 했다. 첫날이라서 준비가 미흡 했었나 보다 싶었으나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건빵을 내어 놓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그 교회 전도사의 고달픔을 알것 같았다. 그러고 돌아 와서는 부실한 기숙사 밥을 먹고 공부 하랴 교회 가랴 얼마나 힘 들까 싶어 눈물이 날 지경 이었다.

마지막날에야  여집사 한분이 부대 앞 식당으로 데려 가서 냉면을 사 주며 위로를 해 주었다. 부흥회가 강사 대접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은 뭔가 잘못 된 것이다. 형편대로 하되 가급적 이면 손님은 후하게 대접 한다는 상식 선에서 벗어 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터득한  종의 도 가 있다. 그중의 하나가 음식을 나무라지 않는 것이다. 맛을 나무라지 않고 질을 탓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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