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사랑

조정칠 목사 0 6,955 2007.04.29 22:03
신혼 시절을 살고 있는 젊은 부부에게는 어느 것 하나라도 행복과 무관한 것이 없는 법이다. 새롭게 겪는 경험들이 서툴고 어색한데도 서로는  불편스럽지 않게 잘도 참아낸다. 그러다가 아기가 들어 선다는 임신의 소식을 듣게 되면 무엇이 망가 지는 것 조차도 잊어 버리는 바보가 되기도 한다.

이웃교회  H군이 결혼식을 올린지 넉 달 만에 신부의 임신 소식이 있었다. 요즘 젊은 이들은 결혼을 하고서도 좀처럼 출산 계획을 서두르지 않는 경향인데 비하면 H군의 가정은 순리적으로 살아 가는 것 같아 대견스럽다. 우리 시대의 사고 방식은 결혼을 하면 아기부터 가지는 것이 당연 하다고 생각 했다.

H군의 신혼 가정은 주위의 교우들로 부터 축하를 받으면서 행복의 행진이 순조롭기만 했다. 그러던 중에 임산부가 정기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의사로부터 하늘이 무너지는 통고를 듣게 된다. 뱃속에 있는 아기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예비 엄마의 충격이 어떠했을지 상상조차 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는 기형아라는 진단을 받으면 잘못 태어나서 한 평생  불행하기 보다는 차라리 지우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대인의 추세라고 했다.  H부부는 깊이 생각 하고 기도하는 중에 아기를 낳기로 결정을 했다. 정상아가 아니라도 잘 키우겠다는 결심을 하고 조금도 동요를 하지 않았다.

어떤 기형아가 태어 날지 그런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심과 생명이 존엄함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누구와도 이 문제를 가지고 상의하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좋은 부모로서 아기를 잘 양육 할수 있도록 기도를 하면서 마음을 다젔다. 어느듯 예정일이 되어 병원에서 순산을 하였다.

어떤 아기일까? 우선 아기부터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었으랴 ! 그러나 그들 부부는 그러지 않았다. 산실의 규칙대로 간호사가 아기를 데려다 줄 때 까지 침착하게 기다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태어나서 처음 대하는 아기에게 바른 예의 같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신생아를 고이 산모에게 안겨 주었다.

얼굴이 생각보다 또렸하고 귀여웠다 신체의 다른 부위는 포대로 앙증맞게  돌돌 싸 놓았다.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본 다음 어디부터 먼저 보아야 할지 몹씨 두러웠다. 분명히 기형아라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어느 부위든가 부모의 가슴을 철렁 내려 앉게 하는 끔찍한 그 무엇이 눈 앞에 들어날 순간이었다.

조심스럽게 포대를 한겹 한겹 제치면서 아기를 살펴 나갔다. 엄마의 눈이 욕심으로 삐었던 탓일까? 아기에게는 아무 흠집도 발견된 것이 없었다. 이미 기계를 통하여 눈으로 식별한 그 어떤 결함도 보이지 않았다. 붐비는 산실 분위기에 떠밀려 이틀 후에 퇴원을 했다. 아기는 똘망 똘망한 건강한 그대로 였다.

궁금하기는 이루 말 할수 없었으나 의사에게도 간호사에게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라면 기꺼이 받아 들이겠다는 우리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주신  믿었기 때문이다. 첫 돌이 지나고 또 한 돌이 지난 지금도 건강한 그 아기는 사랑의 신비를 우리들에게 보여 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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