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마저 그럴 수는 없어 …

조정칠 목사 1 4,609 2005.07.07 02:18
자식과 아내를 버리고 집을 떠난 비정의 남편이 20년이 넘도록 소식을 끊었다가 백수 건달이 되어 옛 집으로 돌아 오고 싶다는 전갈이 왔다. 어느 아내가 그런 남편을 받아 줄 것이며 어떤 아들이 자기들을 팽개친 아버지를 용서할 것인가? 참으로  한심하고 무책임한 남편이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집안에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긴 세월의 아픔과 울분으로 거센 반발이 일어 났다.  단 한 사람도 그이를 받아 주라는 사람은 없었다. 남편 없이 두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지켜 내느라고 어떤 고생을 하였는지 모두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 보다도 고민에 빠진 사람은 그집 아들이었다. 감히 아버지가 돌아 오리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긴 세월 힘든 길을 외롭고 서럽게 살아온 어머니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눈 앞이 캄캄했다. 고민 고민 하다가 담임 목사를 찾아 가 보았으나 뾰죽한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모든 결정은 어머니께 맡기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로지 아들의 판단을 따르겠다고 일관했다. 친척들이 극구 반대 하는데도 아들은 아버지를 모셔 오기로 결심을 했다. 가장이 할 도리를 못해 기운 집안을 그 아들 까지 도리를 저버리면 그 집안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었다.

소문은 바람을 타고  빠르게 그집 화제를 뿌리고 다녔다. 짓궂은 아낙들은 부부가 합방을 했더냐는둥 그동안 살던 여자는 어쨌느냐는둥  공연한 말거리를 만들어  민심을 부추겼으나  그 아들은 무너진 가정을 바로 세워 보려고 온갖 정성을 쏟아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 있었다.

Comments

paulyim 2005.12.14 13:44
  조정칠 목사님의 글을 읽어보면 향기가 물씬 풍긴다. 안 보고도 누가 이 글을 썻는 지 알 수 있다. 듣지 않아도 남긴 흔적때문에 촉촉히 적셔온다. 소식이 없어도 가까이 있고,  모르는 채 지내도 우리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봄바람이다.

충분히 혈기를 부릴 수 있는 상황에서는 찬불을 끼언듯이 기다려주시고
조용히 있어도 될 때에는
그동안 곱씹고 아꼈던 말들을 하나 하나 내어놓는
분위기를 망쳐버리는
이런 신선함!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상투적으로
성령이라고 쓸까?
아니면 나이라고 쓸까?
분명 나도 목사니깐
둘 다라고 써야 은혜스럽고 걸리지 않겠지?

판권만 주면
조정칠 목사님 찬미론을 써서 돈 좀 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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