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을 축제로 대 반전

조정칠 목사 0 1,804 2011.04.14 02:53
우리 교회가 서 있는 마을은  아홉 동리로  구성된 면 단위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그런 이유로 교회가 그곳에 세워진 것은 선교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 면에 아홉 동이 있었으나 아홉 들녘을 끼고 마을이 형성된 탓에 면 소재지에는 상대적으로 민가가 적었다.
 
면 사무소 뒷편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면에서 제일 큰 기관이 그 학교였다. 매년 그 학교 졸업식 날은 아홉 마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어 있었다. 그 날이 고을의 전통으로 내려오는 축제의 날이었다. 학교에서는 각 동과 각 기관장에게 초대장을 발송하는 전례가 있었다.
 
그런데 단 한번도 교회는 초대장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 면에 유일한 교회였으나 완전히 배제당한 채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런 것을 알고 그 축제에 참석했다. 그 면에는 불교의 사찰도 없었고 유교의 향교도 없었다. 오로지 하나 있는 교회를 외면하고 무시한 것 같아 속이 상했다.
 
교회는 삼십년 동안  뭘하고 있었는가 싶었다. 초대를 하지 않은 이유를 캐고 싶은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제 구실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아 민망했다. 식장에는 초청자들의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그 중에 불청객의 자리는  당연히 없었다. 나는 맨 끝에 한 자리를 임의로 만들어 앉았다.
 
식순대로 진행이 되는 동안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할 일은 가만히 있는 것 뿐이었다. 식순 맨 끝에 축사 순서가 있었다. 교감이 내빈석 앞을 지나면서 일일이 축사를 부탁했다. 대다수의 인사들은 고개를 숙여 사양을 하는 사이에 교감이 내 앞 까지 와서 멈추어 섰다.
 
교감과 나는 서로 처음 보는 자리였다. 나는 의도적으로 교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교감은 반사적으로 지금껏 하던 대로 "축사를 부탁합니다!" 라고 했다. 나도 역시 '사양합니다!' 라고 말할 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교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네, 그러지요!"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뚜벅 뚜벅 단상 쪽으로 걸어갔다. 말석에서 단상으로 걸어가는 거리가 짧지 않았다. 그 사이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떤 젊은이기에 저렇게  당돌한 행동을 할 수가 있느냐며 모두들 경악하고 있었다.
 
나는 깔끔하게 5분 정도 축사를 했다. 짧고 간결하게 할 말을 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의 교인들과 몇 일전 교회에서 쫒겨난 그들 밖에 아무도 없었다. 축사가 끝나자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가 나를 놀라게 했다. 식이 끝나자 학교 관계자들이 미처 초대하지 못한 것을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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